1.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1-10)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소가 파괴된 극심한 환란의 날에 예언자는 이 모든 일을 행한 것이 바벨론이 아니라 주님이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어 행하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5). 여호와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 마르둑에게 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어 친히 그의 성읍과 성소, 절기와 안식일을 패하셨다는 고백은 이 모든 일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1-9). 우리가 직면하는 이 모든 일의 주인, 주도자는 다른 무엇, 어떤 세력도 아니라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살아계시니, 이 모든 일은 절망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유일한 회복의 소망입니다. 주님, 우리를 돌아보시고, 악행을 눈감아 주시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은 괴롭고 힘들지라도 거룩함과 온전함을 소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전심으로 따르기를 결단하며 나가는 시기가 되게 하소서. 사회적 거리 유지가 다시 2주간 연장되었습니다. 아직도 주님 앞에 내놓지 않고 거룩함을 회복하지 못한 영역이 있음을 인지하고 다시 돌아보게 하소서. 정결함을 회복하게 하소서.
2.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앞에 물쏟듯 할지어다..(11-19)
주의 통치를 인정하고 소망하면서도 나라 안팎으로 고통스럽고 죽음으로 가득한 현실을 보는 예언자의 마음은 찢어질 듯 괴로워 말할 수 없는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절절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위로하며, 그는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마음을 쏟아 주님 앞에 기도할 것을 전심으로 권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기는 그때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패망한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을 직면하여 낙심할 때,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신다고 믿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길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리고 스스로 쉬지 말고 눈동자를 쉬지 않고 드리는,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고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하는, 무엇보다 생명을 위하여 주께 손을 드는 기도(18-19). 주님, 이 기도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부어주시는 마음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을 향해 서게 하소서. 기도밖에 할 수 없어 드리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 유일한 기도가 되게 하소서.
3.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20-22)
벼랑 끝에서 드리는 예언자의 기도는 주님께 현실을 고발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행을 마다않던 이스라엘을 원수로 삼고 이들에게 진노를 퍼부으신 주님께, 주님의 분노가 쏟아진 백성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그대로 올려드렸습니다. 누구로 인한 진노인지 생각하면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고발이며 기도이지만, 예언자는 진노의 날에도 담대히 기도합니다. 여전히 그는 살아있고, 진노를 거두지 않으신 주님은 여전히 그에게 귀는 열어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예언자는 분명 하나님의 긍휼을 확신하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 진노의 날에 담대히 주님 앞에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긍휼이 그대로 드러난 십자가를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우리는 얼마나 더 담대히 주님앞에 나갈 수 있겠는지요? 주님, 우리의 신분을 분명히 알게 하소서. 담대히 주님 앞에 긍휼을 구하게 하시고, 주의 진노를 멈추게 하는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주께 구하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