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3-5)
* 유다는 스스로 예수님을 판 죄를 뉘우쳤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자가 없음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동안 수도없이 들었을텐데, 주의 말씀으로 결론내지 못한 것이 내내 안타깝습니다. 유다와 같이 스스로 뉘우치는 일이 스스로 목매어 죽는 결론으로 이끄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이 이미 죄짐을 해결하셨다고 했고, 그리고 이제 실제로 그 십자가를 지는 현장에서조차 주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믿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유다를 통해 봅니다. 어떠한 우리의 의식도 주의 말씀을 가리지 않게 하소서. 죄 값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대책없는 것이며, 진리에서 우리를 떨어뜨려 놓아 비극적인 결말을 갖게 하는지 알게 하소서. 죄값을 치룰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이것을 믿고, 죄를 주께 고백하고 사함을 받게 하소서. 베드로와 같이 죄를 통회하되 구세주되신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2.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4-25)
* 유다가 자기 힘으로 죄값을 치루려 했던 것에 비해, 빌라도는 그 재판과정 중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해 회피하며 백성들에게 그 죄값을 돌리려 했습니다. 백성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외쳤지만, 빌라도나 백성이나 이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도, 유대인들도 이 무죄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악의 결과로 지금까지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짐짓 죄의 자리에 거하지 않게 하소서. 죄악에 타협하지 않게 하소서. 당시로서는 죄가 덮어지고 사라진 듯 보일지 몰라도 주님은 기억하시고, 그 죄악이 주님 편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영원히 우리를 추적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직 살아있을 때 죄악이 드러나 주님 앞에서 다룸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직 생명이 있을 때, 주님 앞에 우리 죄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생명으로 덧입는 역사가 반드시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악이 깨끗이 씻기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3.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46)
*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남기신 말로 시편 22:1을 전하고 있습니다. 메시야의 고난시라고 할만한 이 시편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절, 주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고백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한번도 하나님과의 연합이 끊어져본 적이 없었던 주님이 이 단절을 경험하며 죄악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의 실체를 깊이 경험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죽음이 아니면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길을 걸으셨으니, 주님과의 단절이 고통스러운 이 관계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치루신 댓가를 감사로 받아 이 관계회복의 기쁨을 더욱 깊이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