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2-13)
*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오히려 이방인인 빌라도가 이 상황을 더 두려워하는 듯합니다. 사실 왕이라 하면서 그를 죽이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일을 하지 않는 그들의 왕을 존중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왕이라 하면서도 이럴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주님, 혹은 왕이라 하면서도 우리 구미에 맞는지 아닌지에 따라 취할수도 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왕이시면, 우리는 그분께 순종만 드리게 하소서. 순종이 없담면 왕을 죽음의 자리로도 몰아갈 수 있는 배반과 악함이 우리 안에 있음을 보게 하소서.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21-22)
*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자리에 가는 그 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지고 함께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은 고생길인 것 같았지만, 그길이 영원한 영광의 자리가 되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일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도 동일한 의미가 있다 여깁니다. 우리에게 영원의 눈이 열린다면,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함께 걷게 하신 그 일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깨닫고 더 많은, 더 긴 십자가의 길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지금 가는 고난의 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억지로라도 이 길을 가게 하시는 은혜에 더욱 감사케 하소서. 그래서 더 큰 기쁨으로, 더 큰 감사로 주님과 동행하는 십자가의 길을 진정한 축복의 길로 여기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받는 이들을 축복합니다. 억지로를 넘어 기꺼이 이 일을 감당하는 자들을 축복합니다.
-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33-34)
* 그리스도의 죽음의 가장 큰 아픔은 하나님과의 단절이었을 것입니다. 세시간 동안 계속된 육체의 아픔만큼 한번도 아버지와의 연합이 끊어져본 적 없었던 주님이 겪으셨을 철저한 버려짐의 아픔도 처절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가져온 가장 큰 아픔,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을 몸소 치루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끈질기게 우리에게 주님과 24시간 동행하라 하시는 이유는 그 단절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처절한지 아시기 때문임을 우리가 깨닫게 하소서. 용서받고 자녀의 자리를 회복한 자로서, 죄로 인해 다시 이 친밀함이 깨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주님과 깊이, 완전히 연합하여 있는 것입니다. 다른 비결이 아닌 주님과 깊은 연합을 통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과 기도, 세상을 섬기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