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8-9)
* 주님은 우리의 출신성분을 보시지 않습니다. 오직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주님이 그렇게 여기시는 것과 동일하지 않으면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사이의 간극을 깨닫게 하고 돌이키게 해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구원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열매맺는 삶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만 전하게 하소서.
2.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21-22)
*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도 임하시며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그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들로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역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듯이,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은 변치 않는 능력이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자 말씀하심은 이 주님의 사랑하심을 면면히 느끼게 해주시기 위한 주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주님과 24시간 동행하게 하소서. 매 순간 이미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주님의 길을 분별하고 걸을 수 있는 진정한 능력을 누리게 하소서. 가장 행복한 성도의 삶을 살게 하소서.
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23-38)
* 가문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가 어디에 속한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속성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그들은 요셉의 아들 예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의 가문이 어떠한지, 위로 위로 그 시선을 끌어올려 다윗과 아브라함을 지나 하나님까지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자신의 말이 아니라 다윗과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지나 약속을 주신 하나님 그 분 자신에게까지 이끌어올려 그 신뢰성을 분명히 합니다. 약속 자체도 큰 힘이 있으나 약속을 하신 자신이라면 어떤 두려움도, 어떤 의심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내어놓고 오직 믿음으로만 반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결국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셨음을 고백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생명으로 매일을 살아내어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우리의 미약함을 넘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세상의 영혼들을 섬겨 구원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