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7,13)
* 백부장은 이방인으로서 유대인들에게 긍휼을 베풀었던 일과 그의 확실한 믿음으로 그의 사랑하는 종이 치유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나인성의 과부는 유일한 소망인 독자를 잃은 상황중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나 그리스도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그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가 아무런 생각이나 계산없이 행하였던 일이 주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절망중에 있을 때 주님이 강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시어 구원을 경험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믿음으로 주님께 반응하기를 준비해야겠다 결심합니다.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보이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기쁘게 해드리기 원합니다. 무엇을 하든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행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되게 하소서.
2.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27-28)
* 비록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보내졌음을 알았던 세례요한이었지만, 그 부르심이 분명한지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지 확인하려 할 때 주님은 다른 말이 아닌 지금 나타나는 증거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선지자 중 가장 큰 자였던 요한이 누린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인해 누리는 확신과 친밀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이 큰 도전이 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확실히 누릴 수 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작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이미 하나님 나라안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로서 의심없이 확신있게 주님의 뜻을 구하고 누리고 전하고 이루며 살아가게 하소서. 이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임을 잊지 않고 소명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3.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42-43)
* 자기 죄에 대한 깊은 절망이 있는 자만이 구원의 기쁨과 환희를 분명히 누릴 수 있습니다. 소위 값싼 구원은 자기 의식이 분명치 않을 때 값없이 주어진 구원에 대한 오해로 불거지는 잘못된 인식일 뿐입니다. 실제로 구원이 값없이 주어졌을 뿐, 가치없는 것이 아님을, 이미 주께서 그 값을 다 지불하였을 뿐임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가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깊은 인식을 허락하소서. 바리새인들이 제대로된 회개에 이를 수 없었던 이유, 세리와 죄인들이 깊은 회개로 주님의 주목을 받고 감격스러운 새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자기 의식의 차이에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평생 주님과 함께 교회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제대로된 회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마음이 굳어지는 자리에 머물지 않게 하소서. 예배의 자리에서, 일상의 자리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탄식하여 오직 하나님의 속량의 은혜만 간구하는 진정한 회심과 구원의 자리로 들어가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