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영경성도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저의 기쁨을 나누려고 합니다.
간증 자리에 대한 요청이 두 번이 있었지만 사양하였습니다. 아직 교회 생활이 익숙치 않은 부모님껜 우리 가족의 아픔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우리의 간증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향하는 것임을 점점 알아가시는 것 같아 용기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작은 언니의 가정생활이 평탄치 않은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는 매일 부모님을 지키는 전사처럼 언니와 싸웠습니다. 부모님이 언니의 종처럼 살 것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는 괜찮으니 제발 언니와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언니와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으며 기도에 매달릴 때, 하나님은 저에게 언니에게 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니에게 “내가 다 도와줄게”라고 입술로 고백하니 언니는 저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 가족의 불행의 원인은 언니가 아니라 저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12월 작은언니의 가정이 깨졌고, 그 전 몇 달동안 부모님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언니로 인해 부모님이 크게 싸우시던 날 제가 교회에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지난 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만져주셨고 언니는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편해졌어. 우리 교회가자.” 부모님이 그러자고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쉽지 않았던 교회로의 발걸음은 저의 수술을 핑계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른쪽 눈 뒤 근육 염증으로 지난 12월 말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 후에 대중교통과 운전이 어려워 부모님께서 교회에 데려다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첫 주를 오셨고 목사님의 친절한 맞이가 그 다음 주에도 안가기가 미안한 상황이 되었고, 그 뒤로 한 주도 빠짐없이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2주 후 엄마가 갑상선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착한 암이라고 하는데 우리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갑상선암은 별거 아니래 괜찮은 척했지만 아무도 괜찮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 가족 곁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기도의 전령이 있었습니다. 치료의 과정마다 전화로 기도해주시는 목사님, 매일 기도해 주는 나눔방교회 식구들, 동행일기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의 기도, 지난 학교 교사기도 모임 등 그렇게 기도가 쌓여 하나님의 보호 아래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월에는 엄마가 방사선 치료를 위해 격리병동에 3일간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이, 심지어 의료진도 출입하지 않는 병실에서 홀로 있어야 하는 상황에 엄마의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엄마를 지키니까 걱정하지마라고 말했지만 저 역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노트 맨 앞 장에 적어, 두려울 때마다 이 말씀을 적어보라며 노트와 펜을 챙겨 입원하는 엄마에게 드렸습니다. 볼펜을 꾹꾹 눌러 정성드려 쓴 엄마의 성경 필사 노트를 보며 저와 언니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치료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모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며 여러 어려움이 있으셨겠지만,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우리 가족들에겐 큰 축복이었습니다. 셋이 앉아 예배를 드리며 새신자들에겐 생소한 교회스러운 표현들을 해석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 제목을 올리는 시간은 어색하게 멀뚱멀뚱 앉아 있었습니다. 새신자들에게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도록 해도 되나 이런 생각들이 밀려왔지만, 무뚝뚝한 딸이라 부모님 앞에서 감사 제목을 나누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용기를 내어 셋이 동그랗게 손을 잡고 “우리 감사제목 한 가지씩 말해보자, 아빠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난 다 감사해”, 엄마는“난 아빠말고 딸한테만 감사해”, “나말고 하나님께 감사한 걸 찾아야지, 다 감사하다는건 감사한 걸 못찾은거야, 구체적으로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한 걸 느낄 수 있어야해. 그래야 삶이 기쁨이 넘치는거야”. 학생들을 가르치듯 부모님께 말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모범이 되어야 하니 일상에서 감사함을 찾기 위해 저도 노력했습니다. “내가 택배 많이 시켜서 박스 많이 나오는데, 아빠가 매주 분리수거 해줘서 고마워”, “내가 운동복을 맨날 내놓는데 엄마가 매일매일 빨아줘서 고마워”. 저의 감사가 구체적인 될수록 엄마, 아빠의 감사도 구체적으로 되어갔습니다. 성찬식의 의미를 설명하며 성찬에 참여하다 보니 제 마음에 성찬의 기쁨과 감사가 느껴졌습니다. 매 주 목사님들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삶은 변할 수 밖에 없다 하시니 저의 삶이 달라졌음을 보여드려야 했습니다. 새신자인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저의 믿음의 기쁨이 되살아났습니다. 설교 말씀에서 그 의미를 찾아 설명을 해야하니 더 열심히 듣게 되고, 일상에서 감사함을 더 예민하게 느껴야 했고, 말씀처럼 살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을 전도했다고 하지만 저의 믿음의 회복이 있었습니다.
작은 언니 가정의 어려움, 저의 눈 수술, 엄마의 암진단과 치료, 할머니의 장례 등 일년간의 우리 가족의 역사가 부모님을 교회로, 하나님의 품으로 끌어당기고 붙들고 있었습니다. 1년을 되돌아보면 우리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을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예비하신 것인지를 생각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넘칩니다. 예수동행교회는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보내신 천사들의 집합소였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흔들림 없이 교회 이명을 신청했고, 2021년부터 쭉 예수동행교회에서 가족 모두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예정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큰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