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3)
* 분명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지역에 들어오자 일어났던 일들을 보고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블레셋 사람들은 더 확실한 증거를 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지 않고 그분과 거래를 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예물을 드리고 예배하며 찬양한다 하더라도 주님의 성품과 이미 주신 은혜에 무언가를 더하여 증거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이 블레셋 사람들과 다름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주님께 드리는 예물, 헌신이 순전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진짜 하나님이신지 시험하려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경배하기에 드리는 것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예배를 드릴수록 더욱 더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과 더 친밀해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12)
* 블레셋인들이 건 조건은 사실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젖을 먹는 송아지를 떼어놓는 것도, 수레를 한번도 매어보지 못한 소가, 그것도 삐걱거리는 새 수레를 매고 22km에 달하는 길을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간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고, 블레셋 사람들이 그 길을 걸으며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분명 목적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그 단 한가지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이방인이 아닌 성도로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일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자리에 서게 하소서. 결코 이방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의심하지 않게 하소서.
3.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19,21)
*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였지만, 언약궤를 하나님 임재의 자리로 여기지 않았기에 호기심에 들여다보려 하다가 (오만)칠십명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기럇여아림 산지의 사람들에게 이 궤를 가져가 그들에게로 가져가라 명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지만, 자신에게 손해가 될 일이 일어나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기럇여아림에 언약궤를 유배(?) 시킨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임재가 기쁘고 감사한지요? 분명 기쁘게 받았지만, 우리에게 해가된다여기면 쉽게 유배시키고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살아가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주님의 임재는 항상 우리 가운데 계셔야 합니다. 우리 유익에 따라 산지로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24시간 살아가는 일,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하소서.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순간이 축복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