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3-4,13)
* 이삭이 에서를 사랑한 것도 리브가도 야곱을 사랑한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기 전 자기의 욕구를 먼저 채워줄 요리를 요구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이 받을 수 있을 저주를 자신이 받겠다고 하는 말로 야곱의 장자축복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강화시킵니다.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 묻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세상에 있도록 하나님이 택해주신 통로일 뿐이지, 그 주인이 아닙니다. 부모 임의대로 자녀를 대하는 죄를 범치 않게 하소서. 특별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을 억압하거나 그들에게 조정당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과 살아있는 관계 안에 살도록 인도하는 일에만 힘쓰게 하소서.
2.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35-36)
*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에서로 변장한 야곱도 충격이지만, 장자권을 귀히 여기지 않고 팥죽 한그릇에 팔아넘기고도 야곱이 빼앗았다고 말하는 에서도, 차자에게 남겨줄 축복 하나없이 오직 장자에게만 모든 복을 빌어준 이삭도 충격적입니다.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선택적이며 사랑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자기변호 입장에서 문제를 본다면 싸울 수 밖에 없고 권리만 주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잘못을 돌아보는 순간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절감합니다. 오직 사랑만 구합니다. 주님앞에 우리의 연약함, 편협함,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우리의 실체를 내려놓습니다. 언제나 주님과 깊은 연합 가운데에서 살게 하소서. 주님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존재, 넘치는 긍휼로 용서받은 자의 정체성으로 살게 하소서.
3.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41,45)
* 에서는 이일로 아버지 이삭이 죽을때가 가까웠으니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고, 둘 다 잃을 수 없는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피신시킬 수를 찾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평안해 보이나 가족이 각기 죽음으로 이르는 자기 길을 걷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족장의 하나인 이삭의 집안이 이러했다면 우리의 가정은 어떤가 싶습니다. 주님께 온전히 순복하지 못하는 가족구성원이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한다면 그곳이야말로 죽음이 난무하는 무서운 곳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되 제대로 믿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매 주일 드리는 예배가 진실로 우리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성도로서 제대로 주님을 믿어보지도 못하고 표면적 믿음 가운데 죽는 안타까운 인생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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