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6,11)
* 유다는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간 후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지만 두 아들은 죽고 며느리와 어린 아들 엘만 남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엘마저도 죽을까 두려워 계대결혼을 했던 며느리 다말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를 친정에 내버려두었습니다. 주님이 금하신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 뿐 아니라, 하나님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기적이고 무심하게 사람을 대하는 유다의 모습을 보며 실망감이 올라옵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갖고 우리 역시 세상사람들과 다를 바없는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는지 회개합니다. 교회와 성도를 향한 비난중 상당수는 상식적인 수준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처신이 그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성도로 은혜를 입어 살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의 모습을 갖게 하소서.
2.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14-16)
* 어떻게 유다가 양털을 수확하는 때에 딤나에서 창녀를 찾을 줄 알았을까 싶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아들이었지만, 여전히 우상숭배하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삶을 살고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 블레셋의 지역에 있으니 더욱 죄에 빠져들기 쉬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다말은 그런 상황을 꿰뚫어보고 유다의 동선에서 지키고있었습니다. 죄의 유혹이 큰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룩을 지킬만한 경건함이 없음을 절감합니다. 혼자 있을 때, 믿음의 지체들이 없을 때 세상의 방식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그 습관을 버리지 않는 한 또 넘어지고 넘어지고, 파멸에 이를 때까지 넘어질 수 있음을 인식하게 하소서. 지체들을 떠나 혼자 있지 않게 하시고, 믿음의 연대를 단단히 하게 하소서. 마음으로 몰래 사모하는 세상 것들, 우상들을 넘어지기 전에 속히 끊게 하소서.
3.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25-26)
* 유다의 위대한 점은 그의 죄가 드러났을 때 그 죄를 가리려고 하지 않았고, 다시 그 죄악 가운데 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죄악은 치욕적이고 파급력이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가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주님은 오히려 그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죄악으로 넘어질 때 핑계치 않게 하소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죄악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기회로 삼게 하시고, 다시 그 죄악에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온전함과 거룩함을 더욱 완전하게 드러내게 하소서. 우리의 죄인됨이 결코 가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광채를 비추게 하셔서 어느 누구도 그 은혜에서 예외될 수 없음을, 어떤 죄인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주님과 함께 은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배우고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