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7-10)
* 사라의 사후 후처 그두라를 통해 얻은 자손들도 모두 내보내고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가 이삭뿐임을 분명히 했습니다(1-6). 아브라함도 때가 되어 죽었고 사라와 함께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그가 누린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막벨라 굴과 이삭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만민이 복을 누리겠다는 약속은 언제 실현되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싸인, 막벨라 굴과 이삭은 주님이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한 구체적인 씨앗, 출발점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도 아직 그 결과를 보지 못했어도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합니다. 아직 그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평안합니다. 세상이 도무지 이길 수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다가 주님 앞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그 축복의 삶으로 인도하소서.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3)
* 이삭에게 하나님은 태중에서부터 싸우는, 평생 라이벌이 되는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을 주셨습니다. 성향이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각기 다른 두 민족을 이루어가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조건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을 뿐,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이들이 의미가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열망이나 욕심과 다르기 쉽니다. 그러나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판단은 우리가 내릴 몫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주님과 연합되어 있는 것, 그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욕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우리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26,33-34)
* 간발의 차이로 장자가 되지 못한 야곱은 평생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고 욕심을 내었습니다. 그에 비해 에서는 장자가 누리는 축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사모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둘의 욕심과 무지는 이후 큰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욕심과 무지가 있습니다. 둘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리 자아의 소견대로 행하기 때문임을 인식하게 하소서. 욕심 혹은 무지가 우리를 이끌지 못하도록 마음 단도리를 잘 하게 하소서. 욕심이 아닌 사모함으로 하나님 방식대로 하나님의 일을 구하고 이루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누리는 겸손함도 허락하소서. 매일의 일상에서 야곱도 에서도 아닌 십자가를 통과한 주의 성도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