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9)
* 흉년을 피해 그랄로 내려간 이삭은 아브라함이 범하였던 죄악을 또 되풀이합니다. 그 역시 두려움으로 아내를 누이라 하는 거짓말을 하였고 그것이 드러납니다. 죄악은 두려움에 기인하며, 어느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는 지점에서 동일하게 넘어질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본능이라 아주 없어질 수 없으니 그 두려움을 넘어설 큰 믿음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큰 산성이시오 요새라는 고백은 아무리 큰 두려움이라도 주님 앞에서는 넘어설 수 있다는 고백과 다름아닙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그 근거가 무엇이든, 우리의 삶의 근거되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우리 노력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긍휼때문이었음을 기억하고 담대히 한걸음 더 나갈 힘을 얻게 하소서.
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22)
* 그랄로 내려간 이삭은 가뭄중에도 백배의 수확을 거두어 지역에 있는 이들의 미움을 받아 쫒겨났고, 광야에서는 계속 우물이 터져 목자들에게 동일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싸우지 않고 자신이 물러남으로 결국 르호봇이라는 다툼이 없는 우물을 파게 되었습니다. 분명 억울하고 재정적인 손해가 큰 일이었지만, 이삭이 다툼대신 손해를 감수하기로 결정했을 때 주님은 평화도 주시고 그의 손실도 다 채워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재정적인 손해, 억울함 모두 우리 영혼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때, 우리의 삶이 우리의 노력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지키심으로 유지됨을 진심으로 믿고 행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고요하고 평안하게 성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무 죄없이 십자가 지신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주와 함께 살리시고 그 생명으로 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3.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28,33)
* 이삭의 행보를 관찰하였던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았기에 다시 그를 찾아와 동맹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를 쫓아내었던 일에대한 사과도 없고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동맹을 맺고 그들을 손님처럼 잘 대접해 보내고 나서 이삭은 브엘세바를 얻었고,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는 이삭의 지명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조차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소서. 주님 때문에 우리와 싸우지 않고 함께 가기를 원하는 그런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증거가 되게 하셔서 브엘세바의 영광이 넘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