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7,9)
* 바로의 앞에 서게 된 야곱과 그 아들들은 초라한 행색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조금도 위축됨이 없을 뿐 아니라 야곱은 오히려 바로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자로 섭니다. 스스로가 표현하였듯 나그네 길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 결과로 야곱은 하나님편에 선 자, 당시 온 세상의 통치자였던 바로 앞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축복을 선포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고난은 잘 통과한 이들에게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 축복의 길이 어디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길잡이가 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고난 중 받아야 할 교훈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발견하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도 누구든지 축복할 수 있는 자가 되었음을 확신하고 행하는 진정한 축복의 통로되게 하소서.
2.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26)
* 기간이 심해지자 처음에는 돈을, 다음에는 가축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지까지 바로에게 내놓아 식량을 사먹어야 했던 애굽 사람들에게 바로의 토지를 일년동안 경작하고 수확의 1/5을 세로 내어놓는 방법을 제시하였고, 백성들의 충성심을 바로에게로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바로의 녹을 먹는 자들이라 토지를 그대로 소유하고 있으니 이 조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입고 있다 해도, 그 은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 은혜를 은혜로 누리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 너비와 깊이와 넓이를 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고 인식인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살아가며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놓치지 않고 경험하고 인식하고 입술로 고백하며 은혜에 은혜를 더하는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은혜를 은혜로 볼 수 있게 하소서.
3.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29)
*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애굽땅에 장사하지 말 것을 요셉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몸은 애굽에 와 있어도 그의 마음은 약속의 땅에 있었고, 언젠가 반드시 돌아갈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며, 요셉이 그 일을 분명히 도울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속한 곳, 영원히 있을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면 지금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가 확실해집니다. 반대로 무엇을 해야할지 헷갈리고 있다면, 우리의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천국소망을 가진자로서 이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사는 법을 매일 훈련하게 하소서. 그래서 때가 되어 주님이 함께 가자 부르실 때 미련없이 감사함으로 떠날 수 있게 훈련케 하소서. 그 일을 도울 수 있는 이와 끊임없이 마음과 소망을 나누게 하셔서 혼선이 없게 하소서.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과 천국소망, 하나님 나라의 소명을 나누고 함께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자녀들에게 꿈을 꾸게 하시는 주님, 우리 삶이 그 꿈의 연료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