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1-3)
*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외쳤지만, 실제로 그들이 회개하는 것은 요나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회개하면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켜 이들을 용서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효과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땅의 백성이 회개할 마음이 분명했기에 이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안에도 요나와 같은 이 분노가 가득합니다. 우리 생각과 판단이 하나님의 은혜를 대적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태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깨닫고 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 안에 선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가 우리 안에 머물 뿐입니다. 주님, 이 우리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입으로 증언하는 하나님의 정체성과 삶으로 전하는 정체성이 결코 다르지 않게 하소서.
2.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5)
*4장에서 요나는 분통이 터져서 도무지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본심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 땅의 사람들을 멸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 있을까 싶지만, 분명히 그럴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우리가 자주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대로 해주시기를 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성을 냅니다. 주님, 우리가 이런 존재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니느웨에 대해 아무런 아픔도 긍휼도 가지지 못했던 요나처럼, 우리도 굳은 마음을 그저 품고 살아가지 않게 하소서. 모든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긍휼과 은헤를 구하는 대신 우리 원수를 갚아달라 구하지 않게 하소서.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가 실제가 되게 하소서.
3.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9)
* 주님이 이렇게 성질내는 요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시는게 신기합니다. 이렇게 꼬박꼬박 말대꾸 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와 긍휼을 입은 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요나는 결코 깨닫지 못햇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 자세를 생각해보면, 주님, 우리 자신이야말로 주님께 가장 큰 은혜와 긍휼, 덮어주심의 손길을 경험한 자입니다. 어느 누가 우리처럼 깊이 용서받고, 깊이 사랑을 입었는지요? 우리의 악독과 고집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눈 감아 주시고 용서하시는 주님을 마음으로 만나게 하소서. 이 사랑과 용납을 깊이 깨달아가며, 주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 분명한 성도로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