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수동행교회 김정미 사모입니다.
제가 간증하는 자리에 섰던 마지막이 아마도 성도로써 교회를 섬길 때였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이 자리에 서는 것이 조금 두렵고 떨립니다. 김승회 목사님으로부터 간증을 요청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아 망했다)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였습니다. 김승회목사님 스타일을 알기에 계속 긴장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는데 너무도 저를 믿으시면서 제가 맡아줄 것을 확신하시는 듯 보였기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주일마다 성도님들의 간증에 은혜를 누렸지만 막상 제가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어떤 은혜를 나누어야 하는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 간증이 다른 분들에게 아무 감동도 없는 그런 간증이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차츰 생각해 볼수록 저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다만 그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저 자신의 부족함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족함이 드러나도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다면 그것으로도 괜챦은 간증이 되지 않을까 생각에 이 자리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예수동행교회로 오게 된 것을 말하자면, 다른 성도님들과 달리 저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였습니다. 개척소식을 듣게 된 날로부터 지금까지의 저의 반응을 세 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부정, 당황, 그리고 기다림입니다. 단어로만 본다면 그렇게 은혜로운 느낌은 부족하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첫 번째 저의 반응은 부정인데요.
처음 남편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사역이나 신앙적인 권면에 스스로 순종하는 자라고 할 수 있을만큼 적극적이였습니다. 불평보다는 제 연약함이 문제라 생각하며 열심히 애들을 키우고 힘 닿는대로 교회 일을 섬겼습니다. 남편이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며 직장 일을 그만두고 선한목자교회에서 사역하게 되었을 때도 오히려 남편보다도 더 기뻐하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교회라는 울타리에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선한목자교회는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언제나 힘이 되어준 엄마와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한목자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첫 세례를 받고 지체들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세 아이 또한 선한목자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며 교회를 집보다 더 친근한 곳으로 여기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같은 지체들을 만나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나누며 회복되고 성장한 곳이 바로 선한목자교회였습니다. 20여년동안의 신앙생활의 전부를 선한목자교회에서 보냈기에 선한목자교회는 단순히 다니는 교회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저의 존재의 일부같은 곳이었습니다. 언젠가 남편에게 새로운 목회지가 허락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빨리 교회를 떠나야하는 상황이, 그것도 갑자기 결정이 되면서 마음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만큼 제 안의 불평이 오래 자리 잡았습니다.
두 번째 반응은 당황입니다. 개척교회 모임이 시작되면서 마음도 어느덧 정리가 되었습니다. 같이 예배를 드리고 속회로 모여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할 때 많은 위로와 은혜를 누렸습니다. 다시 한번 그 때 그 분들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수동행교회로 첫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제가 마주한 현실은 아주 당황스러운 것이었는데요. 바로 제 본연의 모습, 저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선한목자교회의 사모로써 있는 때는 몰랐던 저의 모습이 예수동행교회로 오면서 속속들이 드러났습니다. 예전의 교회에서 받은 훈련들과 또 맡겨진 사역의 자리가 마치 나의 믿음인 것으로 동일시했는데 그 자리를 떠나와 보니 그것은 잘 만들어진 자리였을 뿐 저의 본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을 어려워하고 관계 안에 잘 들어가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저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변화되었다고 생각되던 부분들이 사실은 낯익은 관계와 낯익은 환경에 적응한 저의 모습이었던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동행교회에 매주 올 때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또 무엇을 해야하는지 헤맸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교인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었지만 말과 몸은 따라주지 않는 날의 연속이었고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힘듬을 느끼고 있을 때쯤 코로나로 인해 교회가 모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랜시간 성도들의 빈 자리를 바라보며 주님이 저에게 다시 한 번 예배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다시 물으시는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래리 크랩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길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우리가 해야 할 반응은 전율하라 그리고 신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새 길을 여시고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선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선하심과 내가 생각하는 선하심과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 선하심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기대하는 선함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정말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동행교회로 인도하신 것은 제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길이 아니었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은 제 안의 단단하고 견고하여 잘 깨어지지 않는 자아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깨어지도록 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바로 성도들과 매주 드리는 예배가 그러했고 성도들과 나누는 동행일기가 그러했습니다.
예배 때마다 전심으로 섬기시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작은 교회와 인원이지만 예배에 부어주시는 은혜와 감동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크시기에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을 예배가운데 직접 경험하는 것이 저에게 무엇보다도 큰 감사와 선물입니다.
2009년부터 동행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거의 10년이 가깝게 일기를 써왔지만 예수동행교회 성도들과 나누는 일기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나눔방이 너무 많아 때로는 수많은 일기들을 읽기에도 벅차지만 성도님들이 달아주시는 댓글로 인해 큰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그 분들의 글 하나에 세심한 관심과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교회를 섬기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매 번 그 분들의 사랑으로 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주님을 진정한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날로부터 처음 주신 말씀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자리는 예배의 자리이고 삶의 자리입니다. 그 둘은 나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제 안에 들어온 교만과 타성이 그 둘의 자리를 서서히 갈라놓을 때쯤 하나님은 예수동행교회로 인도하셔서 제가 살아내는 자리가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삶을 오픈해야하고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까지 모든 드러내는 자리여야함도 깨닫게 하십니다. 사모라고 목회자라고 해서 그 자리를 외형적인 경건의 모습으로 덮어 버릴 수 없게 하신 것이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임을, 너무도 크신 주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예수동행교회 성도님들을 보내주셨음이 이제는 진실로 믿어지고 그 분들과 앞으로 한 몸된 교회를 이루어나갈 것이 바로 저에게 주신 세 번째, ‘기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의 일들을 더욱 사모하며 기대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다시 한 번 코로나로 인해 성도들의 이름만 적힌 빈자리를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지만 주님이 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은 지금의 이 혼란한 시간과 시대를 초월해 진정한 교회됨을 바라는 예수동행교회에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진정한 기대와 소망으로 교회의 한 몸된 자로써 저 스스로를, 성도님들을 그리고 우리 예수동행을 바라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