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11,15)
*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한 것은 믿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과 행위는 누룩과 같이 부풀리는 것이고 거짓된 것이었기에 주님은 이들의 이러한 태도와 말에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향해 서서 살아계시다는 표적을 구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믿기 위함이 아니라 시험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함이라면 주님은 이 행위가 거짓된 위험한 것이라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점검케 하소서. 성도인 우리의 행위를 점검케 하소서. 표적이 없어도 주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깊은 믿음을 주시고, 부풀리거나 거짓된 행위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 경건을 허락하소서. 매일을 주님과 살아가며 정직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19-21.24)
*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며 주님의 행하신 일들을 빠짐없이 보고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도, 그 기적도 가르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맹인을 고치는 기사(22-26)는, 제자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에 있지만 주님이 만지시면 그 눈이 서서히 떠지고 마침내 분명히 보게 될 날이 올 것임을 암묵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주님이 하시는 일, 주님의 마음이 뿌연 안개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여기는 우리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주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끌고 계시며 우리의 닫힌 눈을 만져주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이전보다 점점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니 우리에게는 눈 뜰 날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을 선명히 보게 될 날, 주님의 마음 깊은 곳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인내하며 주님과 꼭 붙어 동행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29.31-32)
* 베드로의 믿음 고백을 들으시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리스도로 당하실 고난과 그 이후 다가올 영광에 대하여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자 바로 직전 강력한 믿음을 고백하였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이때 항변은 주님이 베드로를 꾸짖었다 한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베드로가 고난의 길을 가야한다고 선포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꾸짖은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주님이 행하지 않으실 때 주님께 항변하고 불평하고 분노할 때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기호에 맞추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의 뜻을 따라 변화하는 것만 가능합니다. 오직 순종은, 주의 뜻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뜻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정직한 마음을 내려놓되, 주님을 훈계하거나 가르쳐 스스로가 원하는 길 주시기를 구하지 않게 하소서.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교만한 것인가 깨닫고, 오직 주의 뜻에 순종만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