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12-13)
* 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한 결과가 고난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라면 끝까지 그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과 죽음을 염려하며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아섰지만 바울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역의 목적은 고난과 죽음이냐 또는 생명을 유지하느냐가 초점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하시는 길이냐 아니냐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알려주시는 길을 걷는다면, 그 결과가 어떠한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과 같이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고백한다해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 고백의 자리로 우리를 이끄소서.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그 생명을 풍성하게 일어나게 하는 자리로 나가기만을 소원하게 하소서.
2.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바울이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23,26)
*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그렇게 결사적으로 막아섰던 형제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지만,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역 보고를 하는 바울이 외지에서 겪었던 극심한 반대와 오해를 거두게 하기 위한 예루살렘 사도들의 조언에는 순종합니다. 형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간 것도, 예루살렘 사도들의 조언대로 성전을 방문하여 결례를 행하는 자들을 돕는 것도 바울에게는 복음을 온전히 전하기 위한 사역의 모습이었습니다. 때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제대로 분별하여 받고 순종하게 하소서. 때로는 거스르는 것 같고, 때로는 순종하는 것 같아도, 동일하게 오직 주님께만 순종하게 하소서. 그 은혜안에 거하기만을 구하고 실제고 그렇게 행하게 하소서.
3.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39-40)
* 예루살렘교회 형제들의 조언대로 행한 결과는 성전에서 흥분한 회중에게 붙잡혀 매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로마군인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죽기까지 순종한 바울에게, 주님은 그가 회중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인 이들에게 그들의 모국어 히브리 말로 말하기 시작한 바울을 생각하면 전율이입니다. 어쩌면 주님은 바울에게 이 기회를 주기 위해 이 모든 과정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지고, 특히 안좋은 예감이 적중하는 것 같은 그때, 분명한 하나님의 때가 시작되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계획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저 좋기만 한 것을 표적으로 삼지 않게 하소서. 매일 성실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삶 중에 만나는 모든 것들은 주님의 사인이며 기회로 여기게 하소서. 매순간 주님이 인도하시는 기회를 순종함으로 살려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