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간증을 하게 되면 으레 자랑이 되는 것이 우려스러웠습니다.
간증이라는 것이 나의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서 마음의 부담이 있지만, 나의 자랑이 되지 않고 예수님만 드러나도록 많이 생각하며 간증문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의 집안은 은사가 조금, 강한 곳입니다.
형이 중학교 때 암에 걸렸는데 기도로 나았고, 작은 집의 사촌 둘도 혈우병, 자궁암, 뇌종양에 걸렸는데 순수하게 기도로 거의 나았습니다. 특히 작은 집의 사촌 동생은 태어 난지 일년도 안되서 병원에서 죽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30대 후반에 로스쿨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거의 나았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병원에 가서 촬영을 하면 그 흔적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는 분이신데, 신기한 것은 말씀하시는 반대로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는 것마다 그르치십니다. 그래서 제가 왜 주님께서 시키시는 데로 하지 않으시는지 따지면, 아버지는 항상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라고만 하십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반대로 가셨습니다.
작은아버지는 한 날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고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파도, 파도 물이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부인조차도 당신 말은 앞으로 절대 믿지 않을 거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런데 1킬로미터를 파니 유황온천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제가 우스게 소리로 “작은아버지, 땅을 조금만 더 파면 용암이 나왔겠어요.” 하고 웃습니다.
이렇듯 저는 어려서부터 기도하면 눈으로 봐야 했고, 피부적으로 와 다야 믿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감동이 없고 눈물이 없으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예배였습니다. 그런 날이 많아지면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나의 죄가 생각났고, 수렁에 빠져 한없이 어두웠습니다. 예배에 느낌이 없으면 그날은 하나님께서 저를 버린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부담스럽고 싫어졌습니다. 점점 술과 유흥이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옥은 가지 말아야 했으니, 교회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30대 초반까지 허덕이며 살아가다 선한목자교회를 만났고, 그곳에서 회심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간사로 들어가 본격적인 전임사역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하고 나가서 인테리어를 배우고, 건물의 구조를 배우고, 건축자재도 더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홍정호 목사님이 평소 말씀하던 사회악이라는 것에 부딪쳤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자꾸 계산서 up 시키는 일, 접대하는 일, 뒷돈을 요구하는 일등에 마음의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임사역자로서의 간절한 바람이 다시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고, 김승회 목사님의 제안으로 위지엠의 간사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동행교회를 세우는 일에 평신도 파송선교사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것이 있겠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과 육체에 대단한 부담이 왔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거의 겪는다는 눈떨림 현상이 저에게도 왔습니다. 그냥 그렇게 시간과 사건에 쓸려서 인테리어가 마무리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하라고 하셔서, 어제 오후까지 주님께서 무슨 간증을 하기 원하실까를 계속 생각하다가.. 선한목자교회에서 교회행정, 기획을 배우다 사임하여 인테리어를 배우고, 건축자재를 비롯한 건물의 구조를 알게 하신 것이 이때를 위해 주님께서 사용하신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하는 감사의 시간이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예수동행교회에서 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순간순간 필요할 때 나타나는 기적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지난 주 김승회 목사님의 “한방이 아니라 매일 매일입니다.”라는 설교에서 큰 감동이 되었고 확신이 서게 되었습니다. 전에도 계속적인 훈련을 통해 이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단단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이곳에서 주님과의 동행이 더 깊어져 갑니다.
몇 해 전 목회를 하는 아내의 큰오빠를 만난 적이 있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습니다,
식사를 하며 하시는 말이 이제 당신의 나이가 5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예수님 한분께 맡길건지, 다른 사람들처럼 노후를 준비해 나갈건지… 쉽지 않은 마음의 갈등을 보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찾아가서 뵙는 형님의 얼굴은 평안해보였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예수님만 붙들기로 했구나!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놀랍도록 주님의 이끄심을 경험하는 것을 보는 저의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도 우리 주님께..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꿈에 이렇게,, 계속 가면 나중에 리어커를 끌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동행일기를 시작하게 하실 때, 주님께서 실패한다고 하시며, 그래서 하지 않을 것인지 물으셨을 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면 하겠다는 유목사님의 고백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면 무조건 하겠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 시작이 주님과의 친밀한 동행으로부터 임을 알게 하십니다.
내가 매일 매일 주님을 더 깊이 바라보고 주님과 더 친밀해지려고 하는 눈을 뜨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제 주님 아니시면 안 되고, 갈 곳도, 기댈 사람도 없습니다.
어려울 때나 평안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매 순간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은 예수님 당신이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셔서 손 내미신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사건입니다. 주님! 저도 주님과 더 깊이 동행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